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르후 전투 (문단 편집) ==== 맹장 두송의 막무가내 전진 ==== 서로군의 지휘관이었던 두송은 원래 내몽골에 인접한 [[닝샤|영하]] 사람으로, [[1594년]] 참장의 계급에 오른 전형적인 맹장이었다. 그는 '검은 두송'이라는 뜻의 '두흑자'(杜黑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검은 갑주를 갖추고 황금빛 쌍 칼을 들고 전투에 참가하여 [[섬서성]] 주변의 오랑캐[* 당시 섬서성은 이후 [[준가르]]부가 되는 [[오이라트]]의 침입이 잦았다.]들과의 전투에서 백전백승하는 용맹을 떨쳐 이름이 높았다. [[1600년]] 이후에는 [[내몽골]] 방면으로 전근되어 몽골족을 격파했다.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여 승부를 내는 스타일이었다. 두송은 맹장답게 고지식하고 아첨과는 무관한 인물이기는 했지만, 평소에 자신의 몸에 생긴 칼자국을 자랑하며 다녔고, 공적을 위해서라면 부하들의 고생 등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물이었다. 즉 용맹하기만 한 장수라는 뜻인데, 뛰어난 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돌격대장으로서는 몰라도, 대군을 이끌기에는 뭔가 모자라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맹장이기도 했지만, 지략으로도 보통내기가 아닌 누르하치였으니, 명나라로서는 상성이 썩 좋지 않은 대진이었다. 이런 두송이 전투의 첫단추를 잘못 끼우게 된다. 두송은 2월 말 먼저 [[푸순|무순]]에 도착하여 후금이 미리 비워버린 무방비의 무순을 함락시켰다. 그런데 이후 일기가 안 좋아졌고, 눈까지 내리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원래였다면 음력 3월 1일에 4갈래 부대가 사르후에서 합류하기로 했지만 다른 부대들이 기한 내에 도착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두송만큼은 처음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인 심양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혼자서만 기한을 맞출 수 있었던 상황이었으며, 반면 보병으로 이루어진 다른 부대들은 현지에 도착하려면 10일 정도 걸려야 했다. 두송이 전략적인 고려를 했다면 다른 부대들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움직여야 했으나, 그는 무순을 무혈로 함락시킨 것에 고무되어 의기양양해졌고, 다른 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공을 세우고자 홀로 전진을 개시했다. 두송은 성급하게 군대를 재촉해서 혼하(渾河)를 건넜다. 워낙 물살이 센 강을 말을 타고 급하게 건너는 일인지라, 이 과정에서도 이미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강을 건넌 후에 두송은 사르후(薩爾滸)에 20,000명의 병사를 머물게 하고, 자신은 계번성(界藩城)[* 둘 사이의 거리는 약 8km라고 한다.]으로 10,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떠났다. 누르하치가 계번에 성을 쌓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이미 단독행위를 했는데, 또 그 단독행위를 한 부대를 다시 둘로 나누는 것이었다. 명군이 들은 정보대로라면 계번성은 15,000명의 인부가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지키는 장병은 고작 호위 400여명 뿐이었다. 한번 들이닥치기만 하면 승리는 기정사실로, 두송이 공을 탐내고 무리하게 일을 벌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명군의 움직임은 후금군 휘하 정찰조의 활동으로 누르하치가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즉 명군은 후금군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데 반해, 후금군은 명군 부대들이 분산되어 진격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